“나는 신경쓰지 말라”던 어머니 마음속 일기장을 이제서야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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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논산시 2017 어르신 한글 백일장 시상식… 눈물과 감동
  • 이호영 기자
  • 승인 2017.09.22 17: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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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면 언제나 시골 할머니 집에 놀러오는 손주들이 있다. 아이들은 시골에 오면 너무도 좋아라한다. 할머니집을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도 같다. 하기 싫은 공부를 안 해도 되고, 게임이며 텔레비전도 엄마 눈치 보지 않고 할 수 있으며, 아침에 늦잠도 실컷 잘 수 있는 여유가 할머니집에서는 모두 허용이 된다.

항상 할머니는 손주들이 곁에 있어만 줘도 예쁘고 사랑스러워 잔소리도 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아이들 버릇을 망치는지도 모르겠다. 장난감을 만든다고 온 집안을 난장판으로 해놓고, 물놀이를 하고는 젖은 수건 수영복 물놀이기구들을 늘어놓아 하루에 빨래를 몇 번씩 시켜 할머니의 아픈 허리 다리가 된서리를 맞은 듯 몸이 파김치가 되었다.

그래도 손주들이 재미있게 놀고먹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한없는 사랑이 느껴지고 와줘서 너무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할머니 치킨 시켜주세요, 피자도요, 저는 햄버거 먹고 싶어요” 주문도 많다. “얘들아 할머니가 만든 간식도 맛있어. 옥수수도 감자도 우유 넣고 갈은 복분자주스도 한 번 먹어 보렴”하며는 그리 달가워하지도 않고 싫다고는 안하면서 먹어주니 다행이다.

하루하루 분주하고 힘겨운 일상을 보내다보니 벌써 아이들이 자기 집으로 돌아갈 날이 왔다. ‘손주는 보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는 말도 있지만 막상 떠난다고 생각하니 서운하고 아쉽다. 아들이 아이들을 데리러 시골집에 왔다. “다음에 또 올게요”하면서 할머니를 뒤로한 채 모두 훌쩍 떠나버렸다. 홀가분하면서도 허전하고 그립다. 있으면 힘이 들어 부담이고 없으면 외롭고 보고 싶다. 할머니 마음은 변덕쟁이인가보다.

아이들이 잘 도착했다는 전화가 걸려올 것 같아 할머니는 목을 길게 빼고 수화기만 바라본다.
 

손주에 대한 애틋한 사랑과 그리움으로 가득한 이 글은 충남 논산시 양촌면 오산1리 김분례 할머니가 쓰신 수필이다. 제목은 ‘사랑스런 손주’.
 

시내버스 타고
5분이면 갈 수 있는 장터를
마을 어르신들은
걸어서 걸어서 간다
빈손으로 가도
멀고 다리 아픈 길을
머리에 산나물을 이고
손에는 마늘쫑을 들고
꼬부라진 길을 간다

 

한편 이 글은 부적면 외성1리 윤정순 할머니의 ‘장날’이라는 제목의 시다. 특별할 것 없이 담담하게 써내려간 9줄의 글에 시골 어르신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가슴을 찡하게 만든다.

이 두 작품은 지난 1일 논산시가 주최한 ‘2017 어르신 한글 백일장’을 통해 각각 수필부문과 시화부분에서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22일은 시상식이 열린 날이다.

이날 논산시 국민체육센터에서 열린 시상식에는 황명선 논산시장을 비롯해 각 부문 수상자와 가족 등 400여 명이 참석해 어르신들의 값진 결과물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백일장은 글씨쓰기, 시화, 수필 세 부문으로 나뉘어 진행됐는데, 심사를 통해 대상 3명, 최우수상 20명, 우수상 60명, 장려상 80명, 행복상 80명, 100세 행복상 1명의 수상자가 선정됐다.

전체 244명의 참가자 중 224명 전원이 뜻 깊은 수상의 주인공이 된 셈이다.

김분례 할머니와 윤정순 할머니 외에 부적면 마구평2리 강중모 할아버지도 글씨쓰기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광석면 천동리 이태희 할머니(101세)는 특별한 도전으로 ‘100세 행복상’의 영광을 누렸다.

다 소개할 수는 없지만 아흔이 넘은 백발이 되어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에 눈물이 쏟아진다는 사연부터 달맞이꽃을 보며 인생을 회고 사연 등 인생, 가족, 친구, 사랑을 주제로 다양한 글들이 보는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류제협 문화원장은 “어르신들이 한 자 한 자 정성껏 써내려간 글씨들을 보니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어린다. 감히 점수로 등수를 나누기가 어려웠다”며 “어르신들 모두 앞으로도 글공부 열심히 하시며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기를 기원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황명선 논산시장도 “40년 전 군대 간 아들이 보낸 편지를 읽지 못했다가 이제야 떨리는 가슴을 펼쳐본다는 한 어머니의 말씀에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느낀다”며 “어르신들의 희망이 꺾이지 않도록, 지역사회의 따뜻한 배려 속에서 배움을 계속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하늘이 유난히도 눈 시리게 높고 파랗던 가을날, ‘동고동락(同苦同樂)’ 따뜻한 행복공동체 충남 논산에서 있었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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